동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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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도 同安島 | Duan(Dongan) 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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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동안도 위치.svg | ||
| 위치 | 한반도 동북쪽, 경해 상 | |
|---|---|---|
| 별칭 | 백도(白島), 이제(彛濟) | |
| 면적 | 본섬 | 30,804.0㎢ |
| 전체 | ???㎢ | |
| 인구 | 본섬 | 10,944,387명 |
| 전체 | 10,976,276명 | |
| 인구밀도 | 본섬 | 355.29명/㎢ |
| 전체 | ???명/㎢ | |
| 광역자치단체 | 청광광역시 동안남도 동안북도 | |
| 광역자치단체장 | 서정호 (청광광역시장, 신성동 (동안남도지사, 나유성혁 (동안북도지사, | |
| 최대도시 | 청광광역시 | |
개요
경해 상에 있는 섬으로, 한반도 동북쪽, 혼슈의 남서쪽에 위치해 있다. 면적은 30,804.0㎢로 경상도와 비슷한 크기이며, 인구 또한 영남에 맞먹는 10,944,387명으로 대한민국의 섬들 중에서 가장 크고 인구가 많은 섬이다. 일본의 4개 본섬 중에서는 시코쿠보다만 면적과 인구가 크다.
화산 활동을 통해 형성된 화산섬으로, 중심으로부터 남서쪽으로 조금 치우친 곳에 신부산이 있고 곳곳에 소규모의 기생화산들이 있다.
명칭과 표기
원래 동안은 국가의 이름이었지 섬 자체는 이제(彛濟)라고 불렀다. 그러나 동안국이 오래간 한 섬을 통치했기 때문에 점점 섬의 이름을 뜻하게 되었다.
동안도는 원칙적으로 로마자 표기법에 따라 Dongan으로 표기하나, 일본어 내지는 동안어를 사용하던 시절의 명칭인 Duan으로 표기되기도 하는데[1], 이는 일본에서 동안을 'どうあん(도-안)'으로 읽은 것과 동안어에서 '둥ᅙᅡᆫ'으로 읽은 것이 합쳐진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동안인민공화국 치하에서는 대외적으로 Dungahn으로 표기하기를 요구하기도 했다.
동안일치시기와 미국 시기에 Duan이라는 표기가 정립된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 치하에서는 Doan이라고도 표기하였었다.
역사
인구
동안도의 인구는 동안일치시기 말인 1940년 추계만 하더라도 1,443만 명으로 현재 인구 이상의 인구를 가지고 있었고, 동안인민공화국의 주장에 따르면 1949년에는 1,510만 명이 거주했었다. 특히 청광은 청광부와 근경군을 합하면 1940년 이미 188만 명으로, 나고야를 넘어선 인구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1950년 6·25 전쟁에 참전하면서 많은 젊은 남성이 전쟁에 동원되었고, 한국군, 미국군과 우익이 동안인 민간인 추산 93만 명을 학살하였다. 또 동안도 내 전세가 빠르게 기울자 수백만 명의 피란민들이 해로를 통해 한반도와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인구가 급감했고, 피란한 인구의 대부분은 복귀하지 않았다. 결국 1954년 정전 후 동안 미국 군정청 통계국의 조사에서는 인구 906만 명으로 반토막이 나 버렸다.
이 이후에도 인구가 증가할 일은 많이 없었다. 미국에 의해 경제의 발전이 빨라져 유입되는 인구는 많았지만 출생률이 감소하였으며, 인구 증가가 정체되었다. 1966년 기준 998만 명으로 영남과 인구가 비슷해진 것은 이 시점즈음이라 할 수 있다. 1969년 총조사에서 천만 선을 회복하였고 1972년 대한민국에 반환되기 직전 마지막 총조사에서 1,081만 명이 기록되었다.
대한민국에 반환된 이후로는 문화 산업에 대한 지원이 늘어났고 국가 내에서 비교적 자치권과 경제 수준이 높은 도시가 되면서 인구가 잠시 증가하였다. 1975년에는 청광과 다산을 합해 180만 선을 회복하였고, 전체 인구 또한 1,127만 명이 기록되었다.
그러나 상기된 전쟁의 역사가 있고 동안인의 정계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았기 때문에 군부정권과는 사이가 좋지 못했으며, 전두환 정권 전반(前半)까지 3S정책 등의 방향성과 맞다는 일종의 실리적인 이유의 지원조차 후반에 들어서는 약해졌다. 게다가 청광이 광역시로 승격하면서 동안도의 외곽 지역에 대한 지원은 약해졌고, 청광에 인프라가 집중되면서 결국 1985년 1,171만 명의 정점을 찍고 빠르게 감소한 인구는 10년 만인 1995년 1,044만 명으로 후퇴한다.
국민의 정부 이후로는 호남과 함께 동안도에 대한 지원이 강화되면서 천만 선에 안정적으로 정착하였고, 한국과는 별도의 정체성을 가지며, 청광이 수도를 대신해 일종의 중심지이자 치소로서 있는 지역 특성상 이촌향도 또한 서울이 아닌 청광으로 일어나면서 인구 감소는 적어졌다. 2000년 1,056만 명을 기록한 인구는 25년 동안 41만명 가량이 증가하면서 현재의 1,097만 명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