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남도/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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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동안남도의 정치에 대해 설명한 문서.

국회의원 목록

역대 민선 동안남도지사

최근 선거 결과

특징

1987년 민주화 후, 한때 동안남도는 민주당계, 보수당계, 동안권 지역정당이 3파전 구도를 이루는 곳이었다. 그러나 선진동안당을 끝으로 동안권 정당의 명맥이 끝나면서 충청도과 함께 선거의 캐스팅보터 지역이 되었다. 게다가 대전·세종을 포함한 충청권이 인구가 556만인데 동안남도는 혼자서 451만에 청광광역시까지 합치면 800만이 넘으니 경기도만큼의 중요성을 띄게 된다. 완전히 보수세를 띄지만 인구가 적은 동안북도와는 상반되는 부분.

전체적으로는 선거의 전반적 결과에 이끌리는 경향이 있지만 동안도의 복잡한 역사와 창룡지방(여안), 제진지방(왜안), 근경지방(근기) 3개의 역사적 지역을 합친 행정구역이라는 점 때문에 각 시군별로 정치 성향이 크게 갈린다. 이 때문에 대선에서는 영향이 없지만 총선과 지선에서는 전국적 경향이 옅게 나타난다.

또한 인구 구조상 특이한 지역주의적 지지층 없이도 제3지대가 당선될 만한 유일한 지방 지역이기 때문에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3석을 가져가는가 하면 22대 총선에서도 개혁신당 공성원이 당선되기도 하였다.

충청북도와 함께 대부분의 선거를 적중시킨다. 국회의원 선거까지도 동안권 정당을 배제하면 우세하는 정당은 적중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20대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무소속 후보로 표심이 갈리면서 적중시키지 못했다.

민주화 직후

민주화 직후에는 도내에서 지역 간 차이가 가장 심했다. 군부독재 시절 항쟁에 참여했던 젊은 층이 많았던 청광직할시 인근의 경안시천운시·천원군, 학읍진시평화민주당을 지지했으며, 창룡지방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서부백남 지역은 새마을운동 등에 영향을 받아 민주자유당을, 평호시제진지방으로 알려진 남부백남은 동안도 반환의 주역인 김종필이 선전하면서 신민주공화당을 지지하는 경향까지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포광시 등 동부백남권의 도시에서는 통일민주당이 지지를 얻었다. 결국 4파전이었던 셈.

이러한 경향은 지역주의의 경향성이 없었던 동안도의 특징 때문에 가능했기도 하지만, 그 산업적이거나 인구 구조상의 특징이 다양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기도 하다. 각 지역의 실제 성향과 실정에 알맞은 정당을 지지하다 보니 조각조각 나뉘어져버린 것. 특히 동안도 반환으로 인해 긍정적 효과를 얻은 서부와 남부는 민주자유당신민주공화당이 선전하고 부정적 효과를 얻은 청광시 인근과 동부는 통일민주당평화민주당이 선전하면서 구도가 말 그대로 난잡해지고 말았다.

3파전 시기

시간이 지난 이후에는 인구가 적은 서부와 남부가 비교적 인구가 많은 지역에 묻히면서 민주당계로 표세가 기울었다. 14대 대선에서는 김대중이 매우 근소하게 우세하는 판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한 은익회 등의 주도로 1996년 동안권 지역정당의 시초인 민주동안연합이 성립하면서 3파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김종필만큼의 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15대 대선에서는 단일화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기반이 부족한 신생 정당답지 않은 돌풍을 일으키면서 국민신당 이인제에 이어 6.64%의 득표율을 얻으면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어지는 총선에서 선전하면서 보수정당의 텃밭이었던 서부백남을 제외하고 대부분 민주동안연합으로 기울었고, 20여개의 의석 중 항상 10개 이상을 차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