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샤-하제크 문화
차샤
trácaic
하제크
γádecuï

개요

하제크(차샤: γádecuï)는 차샤-하제크 문화의 철학적 기반이 되는 종교이다. 있는 것은 모두 다른 것을 딛고 있다고, 곧 다른 것에 의존하고 있다고 보며, 이 관계를 적(蹟, décuï)이라 한다. 어떤 것도 스스로 서 있지 않으며, 자신이 의존하는 기반을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한다. 밑은 듣거나 응답하지 않으며, 사람은 죽어서 산 자가 딛는 것이 된다. 인격신을 전제하지 않고, 하늘과 내세를 두지 않는다.

사제냐트 등 한자 표기가 정립된 지역에서는 하적(河蹟 (ハ蹟)) 내지는 하적교(河蹟 (ハ蹟)リ㆑敎)라고도 부른다.

교리

적(蹟, décuï)은 한 것이 다른 것을 딛고 있는 관계, 곧 의존 관계이다.[1] 딛고 있는 쪽, 곧 의존하는 쪽을 위라 하고, 디뎌지는 쪽, 곧 기반이 되는 쪽을 밑이라 한다. 밑의 쪽에서는 밑이 위를 받친다(décuicuï)고 하며, 어떤 것이 딛고 있는 밑을 그것의 적(décutec)이라고도 한다. A가 B를 딛고 있다는 것은 B가 없으면 A가 지금과 같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몸은 땅과 먹은 것을, 생각은 말을, 오늘의 일은 앞선 이들의 일을, 산 자는 죽은 자를 딛고 있다.

적에 관하여 다음을 교리로 삼는다.

  • 스스로 서 있는 것은 없다. 있는 것은 모두 무엇인가를 딛고 있다.
  • 누구나 딛고 있으며 누구나 디뎌진다. 곧 누구나 무엇인가에 의존하면서 동시에 무엇인가의 기반이 된다. 밑이기만 한 것도 위이기만 한 것도 없다.
  • 적은 양이 아니라 관계이다. 늘거나 줄지 않으며, 주고받아 셈할 수 없다.
  • 적에는 방향이 있다. 같은 한정 아래에서 두 것이 서로를 디딜 수 없다.
  • 밑은 선한 것이 아니다. 사람은 그릇된 일도 딛고 있다. 한번 밑이 된 것은 걷어 낼 수 없으며, 그 위에 다른 것을 놓거나 고쳐 받칠 수 있을 뿐이다.

적은 언제나 ‘무엇으로서’라는 한정, 곧 자격의 구분을 수반한다. 자식은 사는 자로서 부모를 딛고 있고, 부모는 부모로서 자식을 딛고 있다. 이처럼 한정이 다르면 같은 둘 사이에서도 적의 방향이 다를 수 있다.

하제크에서는 차샤의 문법적 시상과 관계된 세 가지 상태를 정의한다. 하제크질(河蹟質, u’éti γádecuïli), 게제크질(旣蹟質, u’éti γuédecuïli), 게하제크질(旣河蹟質, u’éti γuéγadecuïli)이다. 이 셋을 아울러 3상이라 한다. 각각 ‘딛다’의 현재시제 완망상, 과거시제 비완망상, 과거시제 완망상의 분사꼴이 고유명사화되어 강세가 첫 음절로 옮겨간 모양이다.

  • 하제크질: 현재. 지금 있으면서 딛고 있는 것이다. 살아 있는 것, 쓰이고 있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 게제크질: 추적할 수 있는 과거. 지나가서 밑이 되었으나, 누구의 무엇인지 아직 짚을 수 있는 것이다. 죽은 부모, 죽은 스승, 길을 낸 이가 이에 해당한다.
  • 게하제크질: 추적할 수 없는 과거. 밑이 되어 받치고 있으나, 더 이상 짚을 수 없는 것이다. 말을 처음 한 이들, 흙이 이에 해당한다.

게하제크질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며, 가장 많은 것이 게하제크질을 딛고 있다. 잊힌다는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게제크질에서 게하제크질로 옮겨 가는 것이다.

함(陷, déctinini)은 밑이 받치지 못하게 되어 그것을 딛고 있던 것이 무너지는(déctini) 일, 곧 기반의 붕괴이다. 밑은 받치고 있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으며, 함이 일어났을 때 드러난다. 몸은 병들었을 때, 말은 떠오르지 않을 때, 사람은 없어졌을 때 드러난다. 하제크는 고통에 목적을 두지 않으며, 다만 함을 밑이 드러나는 때로 본다. 실제로 함이 일어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어떤 것을 거두었다고 가정하여 무엇이 무너지는지를 살피는 일을 가함(假陷, déctincuini)이라 한다. 가함은 일종의 사고 실험이며, 기반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인정된다.

무저(無底)는 가장 밑에 무엇이 있는지를 물을 수 없다는 교리이다. 밑에는 다시 밑이 있으며, 내려갈수록 이름을 짚을 수 없게 된다. 교리는 맨 밑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하지 않고, 궁극적인 기반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한다. 밑바닥은 어떤 하나의 것이 아니라 짚을 수 있는 것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세계의 처음과 끝도 교리로 다루지 않는다. 한편 무천(無天)은 사람 위에서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 없다는 교리이다.[2] 초월적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위에 있는 것은 그를 딛고 있는 것이며, 자식, 제자, 그가 한 일을 쓰는 이들이 이에 해당한다. 다스리는 자도 다스림을 받는 이들을 딛고 있다. 그러므로 다스리는 자리는 남을 딛고 있는 자리이며, 받침을 요구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시간에 대해서 지나간 것은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밑에 있다. 곧 과거는 현재의 기반이다. 앞으로 올 것은 지금 있는 것을 딛으며, 시간은 딛음(décuini)이 거듭되는 것이다. 지나간 것은 없어지지 않고 밑이 되므로,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고 없앨 수도 없다.

자아에 대해서 사람의 대부분은 자신이 보지 못하는 밑으로 이루어져 있다. 몸, 버릇, 말, 자란 내력이 그것이다. 따라서 자신을 안다는 것은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딛고 있는지를 짚어 내려가는 것, 곧 자신의 기반을 추적하는 것이다. 어디까지를 한 사람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스스로 짚을 수 있는 데까지를 그 사람으로 보는 견해와, 보지 못하는 밑까지를 포함하여 보는 견해가 있다. 보지 못하는 밑에서 비롯된 행위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도 이에 따라 달라진다.

죽음(nómalini)은 하제크질이 게제크질이 되는 일이다. 죽은 자(nómalγuoc)는 없어지지 않고 산 자의 밑이 된다. 죽은 자가 남겨 산 자가 딛는 것을 유적(遺蹟, cuarnicedécutec)이라 한다. 흔히 말하는 유산에 가까우나 재산에 한하지 않으며, 그가 만든 것, 가르친 것, 기른 이, 일군 땅, 그리고 땅에 묻힌 몸이 이에 해당한다. 밑은 듣지 않는다. 죽은 자에게는 뜻이 없으며, 산 자를 지켜보거나 벌하지 않는다. 따라서 죽은 자에게 빌거나 바치거나 청하지 않는다. 다만 민간에서는 죽은 자에게 비는 풍습이 이어지고 있으며, 교단은 이를 엄하게 금하지 않는다. 죽음의 종류는 교리상 따로 나누지 않는다. 급사와 객사, 어린아이의 죽음에 서로 다른 원리를 적용하지 않는다. 밑이 되는 것은 이룬 일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으며, 어려서 죽은 아이도 부모가 부모로서 딛는 밑이었다고 본다.

계율

신자에게 네 가지를 요구한다.

  • 술저(述底, ladebýcini): 기반의 확인. 자신이 무엇을 딛고 있는지를 짚어 이름(γýcictiti)을 대는 일이다. 혈통에 한하지 않으며 스승, 쓰는 물건을 만든 이, 사는 땅, 먹은 것에 이른다. 반드시 ‘이 밑은 이름을 알지 못한다’는 말로 끝맺는다.
  • 담적(擔蹟): 책임의 부담. 무엇인가의 밑이 되는 일이다. 받치는 대상은 사람이 아니어도 되며, 기술이나 밭이나 글이어도 된다.
  • 보저(補底, ladedéntylci): 기반의 유지와 보수. 자신이 딛고 있는 것을 고치고 돌보는 일이다. 딛기만 하고 밑을 돌보지 않는 것을 꾸짖는다.
  • 은적(隱蹟, milticedécutec): 익명의 기여.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고 받치는 것을 하나 두는 일이다.

은적을 요구하지만 남에게 보이고자 하는 마음을 허물로 삼지는 않는다. 허물로 삼는 것은 보이지 않으면 받치지 않는 것이다.

받은 것은 밑에 갚을 수 없다. 밑은 듣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딛고 있음에서 생기는 의무는 밑을 향하지 않고, 자신을 딛고 있는 것을 향한다. 곧 받은 은혜는 준 이에게 보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의존하는 이들에 대한 책임으로 갚는다.

한편 세 가지를 죄(cuáγyf)로 삼는다.

  • 부(浮, biuóiaini): 자립의 착각. 자신이 아무것도 딛지 않고 홀로 서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가장 무거운 죄이다.
  • 고저(枯底, latcuónocuini): 기반의 착취. 자신이 딛고 있는 것을 무너질 때까지 쓰는 것이다.
  • 과적(過蹟): 과부하. 받칠 수 없는 만큼을 받치려는 것이다.

과적을 죄로 삼는 것은 밑이 무너지면 그것을 딛고 있는 것도 함께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을 가려 받치는 것은 허물이 아니라 의무이다.

경전

하제크의 경전은 전적시편(傳蹟詩篇)이라 하며, 짧은 시와 이야기의 모음이다. 체계적인 교리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대에 생긴 개별 편이 오랫동안 쌓여 이루어졌으며, 각 편은 ‘전적시 제8편’과 같이 번호로 이른다. 각 편은 죽은 자가 생전에 남긴 말이다. 인격신을 전제하지 않으므로 계시가 아니며, 화자는 어디까지나 사람이다. 대부분의 편은 관찰의 형식을 취한다. 물, 불, 씨앗과 같은 것이 딛고 받치는 모습을 보이는 데 그치며, 교리적 결론을 직접 말하지 않는 것이 통례이다. 교리 용어가 그대로 쓰이는 일도 드물다.

각 편은 차샤 원문을 기준으로 14음절구[3] 13행으로 이루어진다. 13행은 6행구 둘과 홀로 남는 한 행으로 나뉘며, 6행구 안의 배열은 편에 따라 자유롭다. 홀로 남는 마지막 행을 저행(底行)이라 한다. 저행은 지면의 맨 아래에 놓이며, 앞의 12행이 딛는 행으로 본다. 저행에 관해서는 다음의 규범이 있다.

  • 그 시가 딛고 있는 것, 곧 장소나 죽은 이나 본 것을 꾸밈없이 적는다.
  • 13행 가운데 가장 수수한 행이어야 한다. 앞의 12행보다 두드러지는 저행은 잘못 지은 것으로 본다.

저자의 평석, 곧 이름을 새겨 길 아래에 놓는 돌에서 이름이 닳아 읽을 수 없게 되면 그 편은 무명편(無名篇)이라고 불리며, 무명편은 이름이 남아 있는 편보다 권위가 높다.

의례

의례는 탄생, 정초, 함, 임종, 장례, 복상, 마명의 차례로 든다.

탄생(cuátecini) 때에는 갓난아이의 발을 한 번 맨땅에 대게 하고, 부모가 아이의 첫 술저를 왼다. 이를 초적(初蹟)이라 한다. 혈통이 아니라 실제로 받치는지를 기준으로 삼으므로, 초적에서 낳은 이와 거두어 기르는 이를 구분하지 않는다.

집, 길, 제도, 책과 같이 남이 딛게 될 것을 시작할 때 정초(定礎)를 행한다.

파산, 병, 이별, 재해와 같이 무엇인가가 무너졌을 때 성직자를 부른다. 이를 함례(陷禮)라 한다. 함례에서 성직자는 위로하는 말을 하지 않으며, 무엇이 받치지 못하게 되었는지를 당사자와 함께 짚는다. 곧 붕괴의 원인을 함께 확인한다.

임종(臨終) 때에는 죽어 가는 이가 자신이 무엇을 받치고 있었는지를 이르고, 누가 그것을 이어 받칠지를 정한다. 곧 책임의 인계이다. 기술과 지식의 전수, 재산의 분배도 이 절차의 일부로 본다. 이어 받칠 이가 없는 것은 본래 성직자가 맡았으나, 근대 중기 이후로는 공공 기관이 맡고 성직자는 인계를 확인한다. 사제냐트에서는 성직자의 참석을 중시한다. 은적은 임종에서도 밝히지 않는다.

시신은 땅에 묻는다. 묘비를 세우지 않고, 이름을 새긴 평석(平石, ladetrýfic)을 사람이 다니는 길 아래에 놓는다. 밟히는 것을 욕되게 여기지 않으며 예로 여긴다. 평석을 놓는 자리는 제비로 정한다.

죽은 뒤 한 해 동안을 복상(服喪)이라 하며, 이 동안 유족은 그가 없어져서 무너진 것과 돌아가지 않게 된 일을 적어 둔다. 첫 기일에 이를 읽으며, 읽은 것은 죽은 이의 유적으로 헤아린다. 밝히지 않은 은적은 이때 무엇인가가 무너졌다는 것으로만 알려진다.

유족은 해마다 평석을 찾아 이름을 읽는다. 평석의 이름은 다니는 이들의 발에 닳아 읽을 수 없게 된다. 이를 마명(磨名, áfcuüctini)이라 하며, 게제크질이 게하제크질로 옮겨 가는 것, 곧 기억에서 망각으로 넘어가는 것으로 본다. 마명은 누가 정하거나 선언하지 않으며, 이름을 읽을 수 없게 되면 평석을 찾는 일을 그친다. 닳아 가는 이름을 옮겨 적어 두는 일이 허용되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렸으나, 근대 이후로는 행정과 학문에서 기록이 중요해져 마명과 관계없는 일로 보게 되었다. 이에 따라 마명은 기록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는 이가 없게 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성직

성직자는 술저를 주재하고, 함례를 행하고, 임종에 입회하고, 길과 평석을 돌본다. 설교는 하지 않는다. 교리의 풀이는 성직자가 아닌 학자들이 맡으며, 교단은 실제의 행함에 영향이 있을 때에만 이단 여부를 판정한다.

성직은 본래 세습이었다. 한 사람의 수명보다 오래 이어지는 기반이 필요하다고 보아, 성직을 개인이 아니라 집안이 맡았다. 근대 중기에 민주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서면서 세습 성직은 신분에 따른 특권으로 비판받았고, 성직을 맡는 주체는 집안에서 당회(堂會)로 바뀌었다. 당회는 한 당에 속한 신자들의 조합(rótabini)이며, 성직자를 뽑고 당과 길을 관리한다. 개인이 아니라 오래 이어지는 단체가 성직을 맡는다는 원칙은 이로써 유지된 것으로 본다. 옛 성직 집안에서 성직자가 뽑히는 일은 지금도 흔하다.

예배하는 곳은 당(堂)이라 한다. 땅을 파서 낮춘 반지하의 건물이며, 내려가서 들어간다. 제단과 상을 두지 않고, 가운데는 맨땅으로 둔다. 예배는 손바닥을 땅에 대는 것이며, 성직자는 가장 낮은 자리에 앉는다. 정해진 집회는 없고, 탄생, 정초, 함, 죽음이 있을 때 성직자를 부른다. 다만 해마다 한 번 모든 신자가 당에 모여 술저를 왼다.

근대의 변화

중세까지는 교리가 신분 질서를 정당화하는 데 쓰이는 일이 있었다. 낮은 신분은 밑이므로 받쳐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평석의 자리도 사고팔 수 있었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일수록 평석이 많이 밟히므로 그런 자리를 높이 쳤고, 부유한 이들이 네거리와 문 앞의 자리를 사들였다.

근대 체제는 하제크를 국가의 종교로 삼지 않았으나, 그 교리를 제도의 근거로 널리 원용하였다. 주로 원용된 교리는 다음과 같다.

  • 다스리는 자는 다스림을 받는 이들을 딛고 있다는 무천의 교리는 통치의 근거가 국민에게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 밑이기만 한 것도 위이기만 한 것도 없다는 말이 신분제를 부정하는 근거가 되었다.
  • 고저는 본래 개인의 죄였으나, 남의 노동을 무너질 때까지 쓰는 것, 곧 착취에 대한 비판으로 넓혀졌다.
  • 과적의 교리, 곧 감당할 수 있는 것을 가려 받치는 것이 의무라는 교리는 노동 시간을 제한하는 근거가 되었다.
  • 담적과 보저의 개념은 길, 물, 학교와 같이 모두가 딛는 기반(lacuádilici)을 함께 지고 돌보아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 받은 것은 자신을 딛고 있는 것에게 갚는다는 말이 다음 세대와 의존하는 이들에 대한 공적 부양과 연대의 근거가 되었다.

이 시기의 사회 이론이 쓰는 하부구조(lacuádilici)와 상부구조(iücicuádilici)라는 말도 밑과 위의 구분을 사회에 적용한 것이다.

제도도 이에 따라 바뀌었다. 세습 성직이 폐지되어 당회가 성직을 맡게 되었고, 평석의 자리는 사고팔 수 없게 되었다. 임종에서 이어 받칠 이가 없는 것은 성직자가 아니라 공공 기관이 맡게 되었다. 이 세 가지는 오늘날에도 유지된다.

한편 교리와 체제가 부딪친 점도 있었다. 첫째, 체제는 노동과 공헌을 기록하고 표창하는 제도를 두었는데, 학자들은 이것이 은적을 부정하는 것이나 같다고 비판하였다. 둘째, 체제가 국가를 모든 국민의 기반으로 내세운 데 대하여, 국가 또한 국민을 딛고 있으며 궁극의 기반을 자처하는 것은 무저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있었다. 셋째, 노동조합(cýndicuat)의 파업을 두고, 받치던 것을 일부러 거두는 일이 죄인지가 다투어졌다. 파업을 옹호하는 쪽은 이를 실제로 행하는 가함으로 보았고, 반대하는 쪽은 남이 딛고 있는 것을 무너뜨리는 일로 보았다. 이 다툼들은 철학의 문제로 남아 있다.

철학

교리의 풀이가 학자들의 몫이므로 하제크를 바탕으로 한 여러 학문이 발달하였다. 가함은 이들 학문이 함께 쓰는 방법이다. 주장과 주장 사이의 적, 곧 주장이 근거(décunaue)를 딛는 관계를 다루는 학문을 논리학(décuteli)이라 하며, 하제크 논리학 문서에서 다룬다. 학자들은 크게 기반의 추적을 중시하는 쪽과, 추적의 한계를 중시하는 쪽으로 나뉜다. 주로 다투어지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 두 것이 서로를 딛는 일, 곧 상호 의존이 정말로 없는가.
  • 이름을 짚을 수 없는 밑은 있으나 말할 수 없는 것인가, 있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인가.
  • 적 자체는 선악과 무관한데 선악의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릇된 것을 충실히 받치는 일은 덕인가.
  • 파업이나 이탈과 같이 받치던 것을 일부러 거두어 함을 일으키는 일은 죄인가, 밑을 드러내는 정당한 일인가.
  • 기억하라는 술저의 요구와, 망각된 것을 가장 높이 보는 마명의 교리는 어떻게 함께 성립하는가.
  • 기록에 이름이 남아 있으나 찾는 이가 없는 밑은 게제크질인가 게하제크질인가.
  • 국가나 제도는 사람의 밑이 될 수 있는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을 맡은 자는 위인가 밑인가.

공저론

자세한 내용은 공저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공저론(共底論)은 근대 체제의 경험을 이어받은 학자들이 하제크의 교리를 바탕으로 세운 사회주의 사상이다. 체제는 교리를 제도의 근거로 원용하는 데 그쳤으나, 공저론은 교리로부터 소유와 노동과 국가에 관한 이론을 이끌어 낸다. 이름은 추적할 수 없는 밑은 모두가 함께 딛는 것이라는 주장에서 왔다. 공저론의 주요 주장은 다음과 같다.

  • 소유: 어떤 것을 누구의 것이라 하려면 그것이 누구에게서 나왔는지 짚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이 만든 것은 모두 말, 기술, 길, 땅과 같은 게하제크질을 딛고 있으며, 이 부분은 누구에게서 나왔는지 짚을 수 없다. 따라서 생산물 가운데 게하제크질에서 나온 몫은 개인의 것이 될 수 없고 공동의 것이다. 이를 공저(共底)라 한다.
  • 은폐: 밑은 받치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으므로, 사회의 밑이 되는 노동과 돌봄은 평소에 드러나지 않는다. 공저론은 부(浮), 곧 자립의 착각을 개인의 죄로만 보지 않고 제도와 관념이 만들어 내는 것으로 본다. 재산을 홀로 이루었다는 관념이 그 예이다. 상부구조(iücicuádilici)가 하부구조(lacuádilici)를 가린다는 이론을 이와 같이 풀이한다.
  • 가치: 어떤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값이 아니라 가함으로, 곧 그 일을 거두었을 때 무엇이 무너지는지로 가린다. 값은 낮으나 거두면 많은 것이 무너지는 일은 제값을 받지 못하는 일로 본다. 파업은 가함을 실제로 행하여 이를 보이는 일이므로 정당하다고 본다.
  • 착취: 남을 고용한 자는 그 노동을 딛고 있다. 무천에 따르면 위에 있는 자는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딛고 있는 자이며, 딛는 자는 보저의 의무를 진다. 따라서 고용 자체를 죄로 보지 않고, 밑을 돌보지 않은 채 무너질 때까지 쓰는 고용을 고저, 곧 착취로 본다.
  • 상속: 임종의 인계는 재산에 대한 권리를 넘기는 일이 아니라 받치던 것을 이어 받치게 하는 일이다. 이어 받칠 것이 따르지 않는 재산의 상속에는 근거가 없다고 보아 상속의 제한을 주장한다.
  • 변혁: 한번 밑이 된 것은 걷어 낼 수 없으며 고쳐 받칠 수 있을 뿐이다. 이에 따라 기존의 제도를 한꺼번에 없애는 혁명을 부정하고, 의회(córniatoc)를 통한 점진적인 개혁을 택한다.
  • 국가: 무저와 무천에 따라 국가를 궁극의 기반으로 보지 않는다. 공동의 것은 국가가 아니라 노동조합(cýndicuat)과 당회 같은 조합이 맡아야 한다고 보며, 이 점에서 국가를 국민의 기반으로 내세운 민주사회주의 체제를 비판한다. 노동과 공헌에 대한 표창도 은적에 어긋난다고 보아 반대한다.

공저론 안에서는 분배의 기준을 두고 견해가 갈린다. 추적을 중시하는 쪽은 짚을 수 있는 기여는 끝까지 짚어 그에 따라 나누어야 한다고 본다. 추적의 한계를 중시하는 쪽은 짚을 수 있는 몫이 생산물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으므로 필요에 따라 고르게 나누어야 한다고 본다.

  1. ↑ décuï는 ‘딛다’와 ‘디뎌지다’를 가리지 않는 동사로, 본래 ‘발을 대다’를 뜻한다. 차샤의 기본적인 동사 tácuï(주거나 받다)는 décuï에서 나온 형태로, ‘손에 대다’에서 뜻이 옮겨 간 것이다. décuï도 아직 문어적으로 사용된다.
  2. ↑ 차샤의 ála는 하늘과 신을 함께 가리킨다.
  3. ↑ 단어 끝의 발음되지 않는 음절은, 뒤에 자음으로 시작하는 단어가 오거나, i와 종성이 함께 묵음화되고 뒤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단어가 오면 1음절로 계산된다. i만이 묵음화되었고 뒤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단어가 오거나, 생략된 음절이 행의 맨 끝에 오면 음절로 계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