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 319년 총선
| 복고 319년 국민원 의원 총선거 | |||||||||||||||||||||||||||||||||||||||||||||||||||||||||||||||||||||||||
| 316년 316년 총선 |
→ | 319년 5월 17일 319년 총선 |
→ | 322년 9월 9일 322년 총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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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 결과 | |||||||||||||||||||||||||||||||||||||||||||||||||||||||||||||||||||||||||
| 파일:복고319년총선.sv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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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복고 319년 국민원 의원 총선거는 복고 319년 5월 17일 실시된 사원의 국민원 의원 총선거이다. 국민원이 임기 도중 해산됨에 따라 실시된 해산총선으로, 사로제초서 조략 어차선의 첫 재상 취임으로 이어졌다.
총선 직전에는 진밀시죽 가천 휘이민 재상이 이끄는 왕당계 소수내각이 집권하고 있었다. 내각은 민생개혁회의의 협조를 받아 예산을 처리해 왔으나 복고 319년 예산안 협상이 결렬되면서 의회 내 기반을 상실하였다. 예산안 부결 뒤 야권에서 불신임안 제출이 논의되자 휘이민은 왕에게 국민원 해산을 제청했고, 왕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총선이 실시되었다.
선거에서는 공화연합과 중도민주대연합이 합계 145석을 얻어 제1세력으로 올라섰다. 반면 복고, 전통, 부흥과 왕당파 신협회은 122석에 머물러 해산을 통해 의회 다수를 회복하려던 시도는 실패하였다. 좌파당은 59석으로 제3세력을 유지했으며, 민생개혁회의는 31석을 확보하였다.
해산을 제청한 내각이 선거에서 패배함에 따라 휘이민은 총선 뒤 사임하였다. 이후 열린 재상지명선거에서는 공화연합 대표 사로제초서 조략 어차선이 결선에서 재상 후보로 지명되었고, 왕의 임명을 받아 처음 재상에 취임하였다.
해산
휘이민 내각은 출범 당시부터 국민원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소수내각이었다. 민생개혁회의가 예산과 일부 사회·경제 법률에 협조하면서 정권을 유지했으나, 복고 319년 예산 편성을 둘러싼 협상이 결렬되면서 민생개혁회의가 정부에 대한 협조를 철회하였다. 정부 예산안이 국민원에서 부결된 직후 공화계와 좌파계에서는 불신임안 제출이 논의되었다. 휘이민은 불신임 표결에 앞서 국민원 해산을 제청하였다. 해산 자체가 현행 관례를 벗어난 것은 아니었으나, 야권에서는 다수를 상실한 정부가 총선을 통해 정국을 뒤집으려 한다며 반발하였다.
왕궁과 휘이민 가운데 어느 쪽이 해산을 먼저 제안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휘이민은 이후 자신이 독자적으로 제청했다고 밝혔으나, 공화계에서는 왕궁과의 사전 조율이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재상지명선거
1차 투표
| 복고 319년 재상지명선거 1차 투표 |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 1 | 사로제초서 조략 어차선 | 156 | 1위 |
| 공화연합 | 44.19% | 결선 진출 | |
| 2 | 진밀시죽 가천 휘이민 | 125 | 2위 |
| 복고, 전통, 부흥 | 35.41% | 결선 진출 | |
| 3 | 유천 상하주원 | 72 | 3위 |
| 좌파당 | 20.40% | 낙선 | |
| 계 | 선거인 수 | 420 | 투표율 100.00% |
| 투표 수 | 420 | ||
| 무효표 수 | 67 | ||
1차 투표에서 공화연합·중도민주대연합과 무시온시민연합이 어차선을 지지하여 156표를 모았다. 휘이민은 왕당계 122석과 교권주의 국민전선 3석의 지지를 받아 125표를 얻었다.
좌파당, 사회자유주의 노동자연대, 신 자코뱅은 유천 상하주원을 독자 후보로 내세워 72표를 던졌다. 민생개혁회의, 하성인민당, 농촌자치회와 무소속 의원들은 1차 투표에서 어느 후보도 지지하지 않았다.
결선 투표
| 복고 319년 재상지명선거 결선 투표 |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 1 | 사로제초서 조략 어차선 | 259 | 1위 |
| 공화연합 | 67.45% | 당선 | |
| 2 | 진밀시죽 가천 휘이민 | 125 | 2위 |
| 복고, 전통, 부흥 | 32.55% | 낙선 | |
| 계 | 선거인 수 | 420 | 투표율 100.00% |
| 투표 수 | 420 | ||
| 무효표 수 | 36 | ||
결선을 앞두고 좌파계 3개 정당이 어차선 지지를 결정하였다. 정부와 결별하여 해산의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했던 민생개혁회의도 공화연합과의 협상 끝에 어차선 지지로 돌아섰다.
이에 어차선은 259표를 얻어 재상 후보로 지명되었다. 하성인민당 21석, 농촌자치회 6석과 무소속 9석은 결선에서도 기권하였다. 왕은 국민원의 지명 결과를 받아들여 어차선을 재상으로 임명하였다. 이로써 공화연합계는 해산 전 야당에서 새 내각의 중심 세력으로 올라섰고, 어차선은 이후 복고 322년과 325년에도 재상으로 지명되며 장기 집권하게 된다.
이후
319년 총선 뒤 정당 재편도 이어졌다. 민생개혁회의는 노선과 조직을 개편하여 뒤에 4세기 민생의제로 재편되었고, 무시온시민연합 역시 지역조직을 통합하면서 무시온지역연합으로 당명을 바꾸었다. 교권주의 국민전선은 내부의 강경 교권주의 세력이 주도권을 장악한 뒤 교권주의 팔랑헤로 재편되었다. 농촌자치회는 다음 선거를 앞두고 분열되어 일부는 민생계 정당으로, 일부는 왕당계와 무소속으로 이동하면서 국민원에서 독립된 정당으로는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