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기석
분류: 동안의 바둑 기사
| 편기석 片基石 | Pyeon Gi-seok | |
| 파일:편기석.jpeg | |
| 출생 | 1922년 3월 3일 |
|---|---|
| 일본 제국령 동안 남안도 청광부 | |
| 사망 | 1991년 11월 19일 (향년 69세) |
| 동안남도 평호시 평호동안대학교병원 | |
| 국적 | 동안일치시기 → 동안 소련 군정청 → 동안인민공화국 → 동안 미국 군정청 → 동안 미국 민정청 → 대한민국 |
| 종목 | 바둑 |
| 소속 | 청광기원 |
| 단급 | 九단 |
| 입단 | 1946년 |
| 은퇴 | 1985년 |
개요
동안일치시기 말기에 기력을 닦기 시작하여 해방 이후 청광기원을 창설, 초대 원장을 지낸 인물로 동안 바둑의 뿌리로 평가받는다. 소군정과 동안인민공화국, 미군정을 모두 거치는 격변 속에서도 바둑판을 놓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며, 이 시기 청광 지역 기사들의 실력이 한반도 본토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차례 증명해 보였다.
말년에 동안도가 대한민국에 반환된 이후에도 청광기원에 남아 후학 양성에 힘썼으나, 이렇다 할 후계자를 남기지 못한 채 1985년을 전후로 사실상 은퇴하였고 이후 청광기원의 명맥이 한동안 끊기는 결과로 이어졌다. 사후 한국기원으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9단으로 추증되었다.
생애
동안일치시기 청광부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바둑을 접했다. 정규 입단 절차를 밟기 어려웠던 시대 상황 탓에 독학과 사석 대국을 통해 기력을 쌓았으며, 해방 이후 혼란기에도 청광 지역 유지들의 후원을 받아 1946년 청광기원을 설립하고 초대 원장으로 취임하였다.
6·25 전쟁 시기에는 청광기원 운영이 사실상 중단되기도 했으나, 정전 이후 동안 미국 민정청 치하에서 기원을 재건하였고, 1960년대에는 한반도 본토 기사들과의 교류 대국을 성사시키며 청광 바둑의 존재감을 알렸다.
말년에는 지병으로 대국 활동을 줄였고, 1985년 이후로는 공식 기록에 남을 만한 대국을 두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1년 평호시의 병원에서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