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강완
| ||
[ 펼치기 · 접기 ]
|
| ||
|---|---|---|
| DABC Sports 해설위원 | ||
| DUA 호네츠 No.77 | ||
| 섭강완 葉剛腕 | Sup Kang-wan | ||
| 출생 | 1967년 8월 8일 (58세) | |
| 동안 미국 민정청 남안도 평호부 일천정3목 (現 동안남도 평호시 경화구 일천동) | ||
| 국적 | ||
| 학력 | 일천국민학교 (졸업) 일천중학교 (졸업) 평호고등학교 (졸업) | |
| 신체 | 182cm, 97kg, AB형 | |
| 포지션 | 투 선발 투수 → 마무리 투수[1] 타 2루수, 유격수 → 지명타자 | |
| 투타 | 우투좌타 | |
| 소속팀 | 한영 호네츠 (1988~2001) | |
| 지도자 | 한영 호네츠 1군 투수코치 (2003) 동안항공 호네츠 1군 투수코치 (2004~2005) 은협 캐셜럿츠 2군 감독 (2006) 은협 캐셜럿츠 1군 감독 (2009~2011) | |
| 해설위원 | KBS N SPORTS 야구 해설위원 (2001-2002) 청광MBC 야구 해설위원 (2012~2017) DABC Sports 야구 해설위원 (2018~) | |
|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 ||
개요
|
|
| 투수 | 타자 |
前 한영 호네츠의 야구선수이자 前 은협 캐셜럿츠 감독. 섭강일의 동생으로도 알려져 있다.
한영 호네츠의 탄생과 함께 데뷔한 선수로 당시 21명의 선수로 꾸려진 구단 실정으로 내야수와 투수를 겸업하기 시작하였고, 1988-1989 시즌 과도기를 지나 구단 상황이 그나마 개선된 1990년 시즌부터는 선발 투수로 등판하기 시작하면서 KBO 리그 최초이자 유일의 투타겸업 선수로 자리잡았다. 처음에는 김성한과 같이 땜빵으로 들어갔으나 준수한 성적을 보여 자리잡게 된 케이스.
선발투수로 등판하기 시작한 1990년 시즌에는 투수로서 20승, ERA 2.49, 타자로서는 타율 .304, 장타율 .506를 보이며 원년 김성한의 10승과 3할을 뛰어넘는 20승과 3할, 2점대와 3할의 괴력을 보여주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2] 1997년부터는 마무리 투수로 활동하였다.
선발투수로 등판하지 않은 날은 지명타자로 출전했고, 추격 상황이나 꼭 승리해야 하는 경기에는 초반부터 DH가 사라지면 불리하기에 지명타자로 출전했다가 4회 내지는 5회부터 9회까지 투구하는 중무리 투수로도 활약했다. 이쪽은 보다 실험적인 방식이기도 해서 1993 시즌 외에는 많이 쓰진 못했다.
선수 경력
통산 기록
플레이 스타일
투구
초창기에는 팀 사정상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으나, 구단 전력이 안정된 이후에는 확실한 선발 자리를 확보했다. 이후 구위보다는 제구와 완급, 장타 억제에 강점을 보이며 꾸준히 이닝을 책임졌고, 전성기 이후에는 마무리로 전환해 팀의 뒷문을 지켰다. 압도적인 탈삼진형은 아니었지만, 스트라이크 존 관리가 안정적이었고 불필요한 주자를 많이 내보내지 않는 유형이었다. 피홈런 억제 능력은 리그 평균을 상회하는 정도로, 전성기엔 구위보다는 경기 운영 능력과 꾸준한 체력으로 팀의 기둥 역할을 했다. 송진우, 김용수와 함께 통산 100승·100세이브를 기록한 3명의 선수 중 하나이다.
선발 출전 당시 직구의 평균구속은 140km/h대 초반이었으며, 마무리 전환 이후로는 140km/h대 후반을 유지했다. 평균적으로는 선발 등판 후 5이닝 이상을 던졌는데, 경기 후반 들어서도 구속이 잘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오르기도 하는 특이한 형태였다. 선발 시즌 기준 구속으로 140km/h대 초반의 포심패스트볼, 130km/h대 후반의 투심/싱커, 110km/h대 후반의 커브, 결정구로 130km/h대 후반의 포크/스플리터 등을 구사했다.
타격
타격 면에서는 타율이 높았던 장타자 유형으로, 배트 헤드가 짧게 나오는 편이었기에 몸쪽 공에 강했다. 투수인 바 당겨친 타구의 속도가 높고 발사각이 낮은 라인드라이브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당겨치는 공이 장타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선구안은 좋지 않아 타율에 비해 출루율은 낮은 편으로 순출루율이 6푼을 넘은 시즌이 거의 없었다. 바로 배트가 나가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볼-스트라이크 구분을 잘 하지 못했을 뿐더러 다음 이닝 피칭을 해야 한다면 긴 타석은 자신에게도 부담이 되기 때문에 초반에 양질의 타구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고 한다.
낮은 순출루율은 높은 순장타율로 커버가 됐는데, 1994년 순장타율은 0.281, 통산은 0.206으로 생산성 있는 안타를 많이 만들어내기도 했다. 타격의 전성기는 1993년으로, 타출장 0.307/0.388/0.571에 정확히 20홈런·20도루로 20-20 클럽에 가입했다.
주루
주루는 눈에 띄는 스피드는 아니었으나 타구 판단과 스타트가 좋아 주루사·견제사는 적었고, 무리하지 않기 위해서 투수로 나올 때는 도루를 자주 시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많은 출루에 성공했던 1993년에는 20도루를 성공시키기도 했다.
수비
초창기에는 2루수와 유격수를 겸하며 내야 수비에도 나섰으나, 본격적인 투타 병행 이후에는 점차 지명타자와 투수로 역할이 좁혀졌다. 내야수 시절에는 타격보다 수비 때문에 타석에 설 정도 손놀림이 빠르고 송구 정확도가 높았지만 점차 투수 비중이 커지면서 수비보다는 공격과 마운드 기여도로 중심이 이동했다. 이후 지명타자로 나설 때는 타격에 집중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루틴을 유지하였다.
당시 감독은 투수로 뛰지 않았더라도 내야수로 활약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평가
한영 호네츠의 상징이자 KBO 리그를 통틀어도 손꼽히는 투타겸업 성공 사례로 평가된다. 팀 사정상 ‘어쩔 수 없이’ 투타를 병행하기 시작했지만, 1990년대 초반 전성기 동안 보여준 퍼포먼스는 이후 수십 년이 지날 때까지도 비교 대상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특히 1990년 시즌의 20승·ERA 2점대·타율 3할은 리그 환경을 감안하더라도 비현실적인 기록으로, 한 시즌 동안 투수 에이스이자 중심 타선을 동시에 책임졌다는 점에서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을 규정한 시즌으로 회자된다.
통산 기록만 놓고 보더라도 121승 61패 127세이브, 평균자책점 2.92에 타자로는 통산 타율 0.286, 98홈런, 장타율 0.492를 기록하며, 100승·100세이브와 장타력을 겸비한 특이한 커리어를 완성했다. 선발로는 이닝 이터이자 안정적인 이닝 소화 능력을 보여줬고, 전성기 이후에는 마무리로 전환해 또 한 번 성공적인 포지션 변경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완성형 투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투구 스타일만 놓고 보면 압도적인 탈삼진형 파워 피처라기보다는, 스트라이크 존 관리와 장타 억제, 경기 운영 능력에 강점을 둔 전형적인 ‘에이스형 피처’에 가깝다. 구속 자체는 동시대 리그 상위권이었지만, 진가는 위기관리 능력과 긴 이닝 동안 페이스를 유지하는 체력에서 나왔다. 덕분에 감독들 사이에선 “굳이 교체 타이밍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투수”로 평가되기도 했다.
타자로서는 선구안이 뛰어난 유형은 아니었으나, 배트 헤드가 짧게 나오는 스윙과 강한 라인드라이브 타구로 높은 장타 생산력을 보여준 순장타형 거포에 가까웠다. 출루율에 비해 장타율이 크게 뛰어 있는 커리어 특성상 정교함보다는 ‘맞으면 크게 가는 타자’로 기억되며, 1993년에는 타율 0.307, 20홈런, 20도루로 20–20 클럽에 가입하며 타자로서도 전성기를 찍었다. 투구를 병행하면서도 이 정도 수준의 공격 생산성을 유지했다는 점이 평가를 더욱 높여주는 요소다.
포지션과 역할 변화가 잦았음에도 꾸준히 팀 전력의 중심에 있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데뷔 초 내야수–투수 겸업, 이후 선발 에이스, 후반기 마무리로 이어지는 롤 변경은 대부분 팀 사정에 따른 것이었음에도, 어느 역할에서든 평균 이상의 성과를 내며 ‘팀 사정에 가장 잘 맞춰주는 스타 플레이어’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이 과정에서 완투·완봉 기록은 적지만, 포스트시즌에서의 완봉승과 클러치 상황에서의 호투로 인해 팬들 기억 속 이미지는 통산 기록 이상의 에이스로 남게 되었다.
은협 캐셜럿츠 감독 시절에는 현역 시절만큼의 임팩트를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평가도 있으나, 투타겸업을 포함한 선발–불펜 운용에 대한 철학, 투수·타자 분업에 대한 장단점 분석 등은 이후 여러 구단 스카우팅 및 육성 파트에 간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방송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투수 시각과 타자 시각을 동시에 설명해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로, ‘양쪽을 다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해설’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종합적으로 섭강완은 리그 전체를 통틀어도 드문 완성형 투타겸업 에이스이자, 한영 호네츠라는 구단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로 평가된다. 이후 등장한 투타겸업 유망주들이 항상 비교 대상이 되는 이름이라는 점에서, 기록과 상징성 모두에서 하나의 기준점이 된 선수라고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