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강완

삼쩌모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11월 7일 (금) 04:00 판
분류: DUA 호네츠
DUA 호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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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A 호네츠 No.77
섭강완
葉剛腕 | Sup Kang-wan
출생 1967년 8월 8일 (58세)
동안 미국 민정청 남안도 평호부 일천정3목
(現 동안남도 평호시 경화구 일천동)
국적 대한민국
학력 일천국민학교 (졸업)
일천중학교 (졸업)
평호고등학교 (졸업)
신체 182cm, 97kg, AB형
포지션  선발 투수마무리 투수[1]
 2루수, 유격수 → 지명타자
투타 우투좌타
소속팀 한영 호네츠 (1988~1998)
지도자 한영 호네츠 1군 투수코치 (2002~2003)
동안항공 호네츠 1군 투수코치 (2004~2005)
은협 캐셜럿츠 2군 감독 (2006)
은협 캐셜럿츠 1군 감독 (2007~2009)
해설위원 청광MBC 야구 해설위원 (1999~2000)
KBS N SPORTS 야구 해설위원 (2001)
청광MBC 야구 해설위원 (2011~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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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투수 타자
오타니 이전에 섭강완이 있었다.

前 KBO 사무총장 하일성
오타니 이전에 섭강완이 있었다.

前 KBO 사무총장 하일성

한영 호네츠의 야구선수이자 前 은협 캐셜럿츠 감독.

한영 호네츠의 탄생과 함께 데뷔한 선수로 당시 16명의 선수로 꾸려진 구단 실정으로 내야수와 투수를 겸업하기 시작하였고, 1988-1989 시즌 과도기를 지나 구단 상황이 그나마 개선된 1990년 시즌부터는 선발 투수로 등판하기 시작하면서 KBO 리그 최초이자 유일의 투타겸업 선수로 자리잡았다. 처음에는 김성한과 같이 땜빵으로 들어갔으나 준수한 성적을 보여 자리잡게 된 케이스.

선발투수로 등판하기 시작한 1990년 시즌에는 투수로서 20승, ERA 2.49, 타자로서는 타율 .304, 장타율 .506를 보이며 원년 김성한의 10승과 3할을 뛰어넘는 20승과 3할, 2점대와 3할의 괴력을 보여주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2] 1995년부터는 사실상 투수로 전환, 1996년부터는 2년간 준수한 마무리 투수로 활동하였다.

선수 경력

통산 기록

시즌 평균자책점
ERA
경기
G
이닝
IP
승률
WPCT
승-패
W-L
세이브
SV
홀드
HD
선발
GS
완투
CG
완봉
SHO
실점
R
자책점
ER
피안타
H
피홈런
HR
탈삼진
SO
사사구
BB+HBP
폭투
WP
보크
BK
1988 6.54 28 52⅓ 0.333 1-2 1 5 3 0 0 42 38 70 6 38 30 2 0
1989 4.04 33 62⅓ 0.667 4-2 2 10 1 0 0 33 28 65 5 45 28 3 0
1990 2.49 40 202⅔ 0.800 20-5 0 0 32 0 0 64 56 182 18 148 74 7 0
1991 2.64 34 177⅓ 0.773 17-5 0 0 31 0 0 60 52 172 14 149 59 3 1
1992 2.81 36 195⅓ 0.667 14-7 0 1 29 0 0 70 61 206 17 150 68 4 0
1993 2.96 35 179⅔ 0.619 13-8 0 0 29 0 0 65 59 157 11 143 55 3 0
1994 2.82 24 102 0.714 10-4 0 0 19 0 0 37 32 109 10 96 42 2 0
1995 3.20 22 84⅓ 0.667 8-4 8 6 4 0 0 35 30 95 9 88 40 1 0
1996 3.31 41 49 0.429 3-4 28 2 0 0 0 25 18 56 5 46 18 1 0
1997 3.61 43 52⅓ 0.333 2-4 26 1 0 0 0 27 21 71 5 45 23 1 0
1998 4.61 26 27⅓ 0.333 2-4 4 8 0 0 0 19 14 59 6 30 18 0 0
통산 3.11 362 1,184⅔ 0.657 94-49 69 33 148 0 0 477 409 1,242 106 978 455 27 1
시즌 타율
AVG
출루율
OBP
장타율
SLG
경기
G
타석
PA
타수
AB
안타
H
2루타
2B
3루타
3B
홈런
HR
타점
RBI
득점
R
도루
SB
사사구
BB+HBP
삼진
SO
희생플라이
SF
희생번트
SH
1988 0.213 0.279 0.309 74 214 188 40 7 1 3 20 18 3 18 31 2 6
1989 0.276 0.336 0.408 64 220 196 54 9 1 5 29 26 6 19 35 2 3
1990 0.304 0.367 0.506 98 379 332 101 21 2 14 50 46 10 36 57 5 6
1991 0.295 0.368 0.477 87 326 285 84 20 1 10 42 35 8 34 72 2 5
1992 0.283 0.349 0.449 82 314 276 78 18 2 8 38 35 8 31 54 5 2
1993 0.272 0.337 0.469 70 251 224 61 12 1 10 32 28 7 23 52 2 2
1994 0.272 0.333 0.377 37 127 114 31 6 0 2 16 12 5 11 25 1 1
1995 0.333 0.500 1.111 4 15 9 3 1 0 2 4 3 1 4 0 1 1
1996 (기록 없음)
1997
1998 0.667 0.667 1.667 1 3 3 2 0 0 1 3 2 0 0 1 0 0
통산 0.279 0.346 0.448 517 1,849 1,627 454 94 8 55 234 206 48 176 327 20 26

플레이 스타일

투구

초창기에는 팀 사정상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으나, 구단 전력이 안정된 이후에는 확실한 선발 자리를 확보했다. 이후 구위보다는 제구와 완급, 장타 억제에 강점을 보이며 꾸준히 이닝을 책임졌고, 전성기 이후에는 마무리로 전환해 팀의 뒷문을 지켰다. 압도적인 탈삼진형은 아니었지만, 스트라이크 존 관리가 안정적이었고 불필요한 주자를 많이 내보내지 않는 유형이었다. 피홈런 억제 능력은 리그 평균을 상회하는 정도로, 전성기엔 구위보다는 경기 운영 능력과 꾸준한 체력으로 팀의 기둥 역할을 했다.

당대의 많은 투수가 이른바 혹사를 당한 것에 반해 투수로서의 기록만을 보면 완투가 없는 등 현대적인 수준의 경기수인데, 아무래도 타자로도 타석에 섰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체력 관리가 필요했던 듯하다. 타자까지 합쳐 보면 1990년 120경기던 한국프로야구를 투타 합쳐 138경기나 출전한 셈이니 혹사이긴 하다.

결국 겸업 시절의 혹사에 1998년부터 급격히 제구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시즌 말 부상을 입으면서 은퇴를 선언했다. 최동원이 프로에서 단 8년 뛸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이유였다.

타격

타격에서는 투수로서만큼의 기록을 세우진 못했으나 전성기에 3할대를 기록하고 타격을 내려놓기 전까지도 2할대 중반으로 준수한 타격을 보였다. 선구안이 좋아 존 관리는 무리없이 되는 편이었으며 거포형은 아니었기에 홈런보다는 단타와 2루타 비중이 큰 편이었다.

유일한 100안타 시즌으로 전성기였던 1990년 시즌에는 3할 0푼 4리에 홈런 14개를 쳐내기도 했고 당시에 3번 타자로 주로 출전했었다.

주루

주루에서는 스피드를 갖춘 유형은 아니었기에 순간 가속보다는 타이밍을 이용해 진루를 노리는 유형이었다. 체형상 민첩함은 떨어져 ‘무리하지 않는 주루’로 도루를 자주 시도하지 않았다. 통산 517경기에 48도루로 11경기당 한 번 수준이었다. 단 도루성공률은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으로 타이밍을 잘 보는 선수 중 하나였다.

수비

초창기에는 2루수와 유격수를 겸하며 내야 수비에도 나섰으나, 본격적인 투타 병행 이후에는 부상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점차 지명타자와 투수로 역할이 좁혀졌다. 내야수 시절에는 타격보다 수비 때문에 타석에 설 정도 손놀림이 빠르고 송구 정확도가 높았지만 점차 투수 비중이 커지면서 수비보다는 공격과 마운드 기여도로 중심이 이동했다. 이후 지명타자로 나설 때는 타격에 집중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루틴을 유지하였다.

평가

여담

  • 자신의 은퇴 경기에서조차 3년 만에 7회에 투수이자 타자로 등판, 홈런 하나 단타 하나를 치고 투수로서는 상대 삼성 라이온즈 타자들을 두 번 연속 삼자범퇴시켰다. 9회초에는 마무리 이상경이 등판하여 9회말 없이 경기 종료.[3]
    • 호투와 호타를 모두 보여줬기에 은퇴 경기에 연타석 홈런을 쳐낸 이승엽과 함께 자주 거론되는 은퇴 경기다.
  • 통산 완투·완봉은 없으나 1990년1993년 한국시리즈에서 각각 1번의 완봉승이 있다. 투타 모두 가을에 좋았던 선수였기에 가을야구에서 더 많이 활약했다고도 전해진다.
    • 7차전까지 가면서 길게 이어졌던 1990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완봉승과 연타석 홈런을 한번에 해냈다. 결국 팀은 3:6으로 승리한다.
    • 같은 해의 7차전에서도 6차전에서 선발 등반해 지명타자로만 출전하기로 했지만 8회에 불펜진을 모두 소진하고도 연장 10회까지 경기가 이어지자 8회 중무리 투수로 등판해 호투를 펼쳤다. 그의 호투를 바탕으로 11:9였던 경기를 동점으로 만든 후 10회 이용덕이 만루 홈런을 쳐내면서 11:13으로 한영이 승리했고, 이때 마무리로서 자질도 있다고 판단했는지 1996년부터는 마무리 투수로 출전했다.
  1. 중간 계투 (1988~1989, 1998)
  2. 이 시즌에는 규정이닝인 120이닝을 82.2이닝 초과, 규정타석인 372타석을 7타석 초과하며 규정이닝과 규정타석을 모두 달성했다.
  3. 원래 투수가 타자로 등판하면 지명타자 제도가 소멸하여 앞으로 나오는 투수가 타순에 포함된다. 이상경이 9회에 등판했기 때문에 타석에 설 필요가 없어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