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분류|청광광역시의 사건사고}} {| class="wikitable" style="max-width: 450px; width: 100%; float: right; border: #000 2px solid;" |- ! colspan="3" style="background: #000; color: #fff; padding-top: 7px;" | <big>상진동 청포선 지반침하 참사</big><br>上津洞 晴浦線 地盤沈下 慘事 |- ! colspan="2" style="background: #bc002d; color: #fff;" | 발생일시 | [[2004년]] [[11월 9일]] 오전 8시 38분<br>사고일로부터 '''+{{#expr: ( {{#time:U}} - {{#time:U|2004-11-9}} ) / 86400 +0.5 round 0}}일''' |- ! colspan="2" style="background: #bc002d; color: #fff;" | 발생위치 | [[청광광역시]] [[북구]] [[상진동1가]] · [[벽정동]] 일대<br>(現 [[청광광역시]] [[북구]] 동서대로 119<ref>사고 희생자들을 기억하자는 차원에서 도로명주소 도입 직전인 2008년 11월 9일, 4주기를 맞아 [[동서대로]]와 [[서인대로]]의 경계를 조정하여 [[상진추모공원]]의 주소를 사고 발생 날짜와 같도록 했다.</ref>) |- ! colspan="2" style="background: #bc002d; color: #fff;" | 유형 | '''지반침하''', 탈선, 전복 |- ! colspan="2" style="background: #bc002d; color: #fff;" | 사고 원인 | 무리한 발파로 인한 대규모 지반침하 |- ! colspan="2" style="background: #bc002d; color: #fff;" | 탑승 인원 | '''승객''': 786명, '''승무원''': 5명 |- ! rowspan="3" style="background: #bc002d; color: #fff;" | 인명 피해 ! style="background: #bc002d; color: #fff;" | 사망 | '''504명''' |- ! style="background: #bc002d; color: #fff;" | 부상 | '''752명''' |- ! style="background: #bc002d; color: #fff;" | 실종 | '''34명''' |} {{목차}} == 개요 == [[2004년]] [[11월 9일]], 대한민국 [[청광광역시]] [[북구]] [[상진동1가]] 및 [[벽정동]]<ref>모두 행정동 [[상진동]] 관할이기 때문에 흔히 '상진동 지반침하 참사'로 불린다.</ref> 일대에서 발생한 대형 지반침하 사고.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인명 피해를 낳은 사고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무리한 도심 철도 지하화 공사가 주된 원인이 되었으며, 이 사고로 '''504명이 사망하고 752명이 부상을 당했다.''' == 배경 == 교통량 증가 및 건널목 사고와 소음 등으로 지상철도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3회 지선]] 당시 한나라당 [[청광광역시장]] 후보 [[신기민]]은 [[청포선]] 시내구간 전체를, [[북구청장]] 후보 [[이조규]]는 [[청포선]] [[청광역]]~[[답리역]] 구간을 지하화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당선된다. 본래 지하화를 할 때에 열차 운행을 정지하고 하는 방법이 주로 시행되나, [[동안도]] 운송의 대동맥인 [[청포선]]을 운행중지시킬 수 없어 [[공대역]]~[[판석교역]] 구간을 먼저 시범사업 삼아 운행중지하지 않고 지하화하기로 하였다. 타 지역 정치권 또한 철도 지하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기에 해당 계획에 찬성하는 입장을 표명하였고, 2003년 성공적으로 착공하며 대한민국 역사상 지상선에 철도가 운행하는 동안 철도를 지하화하는 첫 사례가 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 경위 == 2004년 11월 9일 오전 8시 38분경, [[청포선]] [[공대역]]~[[판석교역]] 구간 [[청포선]] 지하화 공사 현장에서 발파작업이 이루어지던 중 지반이 갑작스럽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반이 내려앉으며 직경 약 22m, 깊이 약 30m의 대형 싱크홀이 형성되었고, 싱크홀에는 [[동서대로]]와 조원로(現 [[금융로]]) 위를 달리던 차량 7대(승객 포함 19명), 행인 6명, [[청포선]] 열차 1편성 및 2층짜리 상가 건물 1채가 추락했다. 직후 싱크홀로 인해 전봇대 등 주변 시설물이 붕괴하며 인근 도로와 건물에 추가 피해를 유발했다. 상진동 일대는 연약지반이었으나 '''두산건설'''은 이러한 문제를 간과하고 무리하게 공정을 진행했다. 11년 전의 구포역 열차 추락사고와 같은 원인으로 같은 사고가 발생해 더 큰 피해를 입힌 것.<ref>차이점은 '''철도청''' 또한 이를 막지 못한 데에 있어 책임론이 불거졌다는 것이다.</ref> 이에 두산건설에서는 지반 조사 중 오류가 있었다고 밝혔다. == 여파 == * 추락한 열차에 탑승 중이었던 승객 중 364명이 사망하였고 535명이 부상당했으며, 사고 복구 및 보상비용으로 약 2조원 이상이 소모되었다. 이로 인해 청광광역시 지상철도 지하화 계획은 전면 백지화되었으며, 사고 지역 일대는 재개발을 진행하였다. * 청포선 운행이 잠시 전면 중단되었다가, 복구되는 동안 [[청광역]]의 청포선 부분의 기능을 [[판석교역]]으로 잠시 이전하는 방안으로 되었고, 2년 후에 사고 구간의 운행이 재개되었다. * 지난해 두산이 부도난 고려산업개발을 기껏 인수해와 두산건설과 합병한 지 반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두산에게 엄청난 악재였다. 법원은 건설산업기본법 제82조의 2항에 따라 두산건설에 1년의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고, 두산은 김홍구 사장을 사고 하루 만에 해임하고 경창호를 새로 임명했으며, 피해자 및 유족들에게 보상금 총 1조 5천억원을 배상하였다. * 이로 인해 [[판석교동아시아국제업무지구]], [[수경7지구]], [[탄벌호수마을]], [[단백관광특별지구]] 등 [[청광광역시]]로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던 두산의 계획은 완전히 엎어져버렸고, 사고 이후 16년간 두산건설은 [[청광광역시]]에 거의 손을 대지 못했다. * [[신기민]] 시장과 [[이조규]] 북구청장은 '''즉각 사임'''하였고, 보궐선거를 진행하게 됐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무리하게 추진했기 때문에 한나라당은 타 지역에서 압승한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4회 지선]]에 이은 [[제18대 국회의원 선거|18대 총선]]에서조차 청광시에서만은 참패했다. * 이 사고로 철도청이 동안도 지역에 대해 소홀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이뿐만이 아닌 여러 가지 요인이 있으나, 2005년 한국철도공사와 국가철도공단으로 나누어질 때 개편 과정에서 지역본부를 설치하는 대신 [[동안철도공사]]라는 이름으로 자회사를 설치하여 동안도 지역을 관할하게 한 데에 일정부분 영향을 줬다. <hr>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나무링크 (원본 보기) 틀:목차 (원본 보기) 틀:분류 (원본 보기) (보호됨)상진동 청포선 지반침하 참사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