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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wikitable" style="max-width: 450px; width: 100%; float: right; border: #000 2px solid;" |- ! colspan="3" style="background: #000; color: #fff; padding: 7px;" | <big>진남포 철수작전</big> <br> 鎭南浦撤收作戰 <br> Jinnampo evacuation |- | colspan="3" style="padding: 0;" | [[파일:진남포 철수작전.png]] |} == 개요 == {{nl|6.25 전쟁}} 중인 [[1950년]] [[12월 3일]] 부터 [[12월 11일]]까지 {{nl|국군}}과 {{nl|유엔군}}이 {{nl|중공군}}의 대공세에 밀려 {{nl|평양}}을 포기하고 {{nl|평안남도}} {{nl|진남포시}} {{nl|대동강}} 하구의 진남포항을 통해 해상으로 탈출한 대규모 철수 작전. {{nl|동해}}의 {{nl|흥남 철수작전}}이 비교적 {{nl|수심}}이 깊고 {{nl|조수 간만의 차}}가 적은 환경에서 순탄하게 진행된 것과 달리, 진남포 철수작전은 {{nl|서해}} 특유의 거대한 조수 간만의 차와 광활한 {{nl|갯벌}}이라는 최악의 지리적 조건 속에서 수행된 사투였다. 이 작전을 통해 사선을 넘은 '''15만 명'''의 피란민은 현재 [[송안도(섬)|송안도]]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 작전 암호명 == '''오로라 작전(Operation Aurora)'''은 [[1950년]] 12월 초, 유엔군 사령부와 미 제8군단 사령관 월턴 워커 중장에 의해 승인된 서부전선 최대의 해상 철수 및 거부 작전이다. 당시 동부전선의 미 제10군단이 흥남에서 철수를 준비하던 것과 발맞추어, 서부전선의 군단급 병력과 민간인을 안전하게 송안도로 이전시키기 위해 발동되었다. 당시 북한군과 중공군의 도청을 방지하기 위해, 통상적인 '후퇴(Withdrawal)'나 '철수(Evacuation)' 대신 기상 현상을 뜻하는 '오로라'를 암호명으로 사용했다. == 배경 == 그날 오후의 바닷물은 무심하게도 빠르게 빠져나갔다. 썰물과 함께 드러난 광활한 잿빛 갯벌은 배를 타지 못한 이들에게는 거대한 무덤처럼 보였다. 눈바람을 뚫고 평양에서부터 진남포 부두로 몰려든 군중들은 함선들이 갯벌에 걸려 멀어지는 것을 보자 비명과 통곡을 쏟아냈다. (중략) 부두 위는 순식간에 수라장이 됐다. 갯벌에 무릎까지 빠진 채 배의 밧줄을 잡으려는 아비들과, 머리 위로 쏟아지는 중공군의 박격포탄 소리에 아이를 놓쳐버린 어머니들의 울부짖음이 뒤섞여 진남포항은 그야말로 지옥의 축소판이었다. 사람들은 저 진흙 수렁을 벗어나 배에 오르지 못하면, 등 뒤에서 타오르는 평양의 불길 속으로 영영 사라질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br> (소설 《진남포의 새벽》 중에서 인용) [[1950년]] 11월 말, {{nl|청천강 전투}}에서 {{nl|중공군}}의 '망치와 모루' 전술에 휘말린 미 제8군은 괴멸적인 타격을 입으며 전면적인 후퇴를 결정했다. 서부전선의 핵심축이었던 미 제2보병사단이 {{nl|개천시|군우리}} 전투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으며 전선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고, 이 틈을 타 중공군이 평양 외곽을 빠르게 우회하여 남하하기 시작했다. [[12월 1일]], {{nl|유엔군}}은 {{nl|평양}} 사수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전 병력에 후퇴 명령을 내렸으나, 이미 중공군 유격부대가 {{nl|황해도}} 서부와 {{nl|원산}} 인근을 장악하며 육로 퇴로가 차단될 위기에 직면했다. 이에 {{nl|유엔군}}은 12월 초, 서부전선의 잔존 병력과 피란민들을 해상으로 탈출시키기 위한 '''오로라 작전(Operation Aurora)'''을 발동했다. 미 제2보병사단과 국군 제1보병사단은 추격해오는 중공군을 막아내며 서해의 요충지인 {{nl|진남포시|진남포}}로 집결했다. 이것이 훗날 [[송안도(섬)|송안도]] 현대사의 기점이 된 진남포 철수작전의 시작이었다. 당시 육로 후퇴 대신 해로를 택해야 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중공군 제38군과 제40군이 {{nl|평양}}-{{nl|개성}} 간 본도(本道)를 차단하기 위해 빠르게 기동하고 있었으며, 동부전선의 {{nl|원산}}마저 적의 수중에 떨어지면서 한반도 허리 부분이 완전히 잘려 나갔기 때문이었다. 즉, {{nl|대동강}} 하구의 진남포항을 통해 바다로 나가는 것 외에는 {{nl|평안도}}와 {{nl|황해도}} 북부에 고립된 수십만의 병력과 시민들이 생존할 방법이 전무했다. 이에 미 제8군 사령부는 진남포항을 중심으로 반원형의 '''진남포 교두보(Jinnampho Perimeter)'''를 설정하고, {{nl|서해}}에 전개한 미 제7함대의 함포 사격과 항공 지원을 받으며 사상 유례없는 악조건 속에서의 철수를 준비했다. == 진행 == == 후일담 == == 대충매체에서 등장하는 진남포 철수 == == 관련 문서 == * {{nl|흥남 철수작전}} * {{nl|1.4 후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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